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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치앙마이 4편] 모든 코끼리들이 행복해지는 그날까지

등록일 : 2023-05-11 관련자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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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우쌤

지난 3회차에 걸쳐 태국 치앙마이 코끼리 자연공원(ENP)로 떠난 코끼리 원정대의 이야기를 들려 드렸습니다.  아쉽지만 오늘은 그 마지막 시간인데요

만남이 있다면 헤어짐도 있는 법이겠죠? 이미 정이 들어 버린 ENP와 코끼리 그리고 이곳에서 동고동락한 자원봉사자들과의
 작별이 참 쉽지 않았답니다. 그래도 이번 여행은 동행한 모두에게 참 많은 것들을 남겼는데요.

코끼리 원정대의 뭉클하고도 따뜻했던 여정, 그 마지막 순간을 따라가 봅시다.

동물들의 평화로운 쉼터

ENP가 코끼리들만을 위한 낙원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이곳에는 코끼리 외에도 개, 고양이, 물소 등 현지에서 구조된 여러 동물들이 보호되고 있기 때문인데요. 오늘은 그중에서도 ‘Cat Kingdom’이라고 부르는 고양이 마을을 찾았습니다. 각양각색 고양이들이 풀밭에 널브러져 따사로운 햇살에 온몸을 맡기고 있습니다. 동화 속 한 장면처럼 평화롭기 그지없네요. 사람의 손길이 익숙한 이곳 고양이들은 먼저 우리에게 다가와 툭툭 건드리기도 합니다. 곳곳에는 아픈 고양이들이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도 마음만은 편안해 보여서 다행입니다.

캠프 여기저기에서 불쑥하고 나타나는 개는 또 어떻고요. 아무 곳에서나 배를 깔고 잠을 청합니다. 보는 것처럼 이곳은 동물과 사람, 그사이에 어떤 경계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머무는 공간에 동물들도 스스럼 없이 드나들고, 동물들이 지내는 곳으로 사람들도 들어갈 수 있죠. 이건 서로를 해치지 않겠다는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이곳에서의 일과 중 스카이 워크를 걷는 활동이 단연 기억에 남습니다. ENP의 나무 데크를 따라 산책하며 코끼리들을 만나는 시간인데요. ENP 옆으로는 시원한 매탱강이 흐르고, 나무 데크를 따라 난 대지는 온통 초록으로 가득합니다. 총 5개의 전망대에서 이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데 우리는 첫 번째 전망대에서 ENP와 코끼리들의 생활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출발했답니다. 따스한 햇살 아래 걸음을 옮기다 보면, 우리가 겨울이 한창인 한국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도 절로 까먹게 됩니다.

길을 걷다가 눈이 마주친 코끼리들은 우리 쪽으로 성큼 다가오기도 합니다. 먹이를 달라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저는 이게 친근함의 표시라고 믿고 싶습니다. 코끼리는 살짝 올라간 입꼬리, 반달눈 덕분에 원래도 웃는 상인데요.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봉사자들을 보면 더 방긋 웃어 주는 것만 같습니다.

ENP의 코끼리들은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사연을 안고 이곳에 모였지만 태초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잘 어울립니다. 그 속에는 사람들의 정성 어린 보살핌과 적응의 시간이 있었겠지만요.

ENP에서 만난 사람들

ENP에 오지 않았더라면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이토록 긴 시간을 함께 생활할 일도 없었겠죠? 잘 어울리며 살아가는 동물들만큼이나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끼리도 참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코끼리를 중심으로 연대한 우리는 친해지는 것도 금방이었는데요.

특히 제가 속한 D조의 할머니 4인방이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호주에서 온 킴은 3개월간 이곳에 머물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미국에서 온 앤은 ENP에 온 것이 이번이 벌써 여섯 번째라고 말해 두에게 놀라움을 안겼죠. 앤은 이곳을 다녀간 횟수만큼이나 ENP라는 공간을 사랑하는 인물인데요. 은퇴한 중등 교사인 앤은 동료 교사였던 수지에게 이곳을 추천했고, 수지가 다시 동네 친구인 조안에게도 이곳을 추천하면서 이번 기회에 다 함께 오게 된 거라고 하더라고요.

이들은 모두 70세가 넘은 노인이지만 특유의 유쾌함과 긍정 매력으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수지는 우리나라 나이로 85세인데 모든 활동에서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엄청난 책임감과 열정 앞에서 존경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더라고요.

그리고 이분들이 없었다면 저는 ENP에서 잘 지낼 수 있었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바로 7일간의 모든 활동에서 담임 선생님 역할을 해 주신 5명의 가이드들이에요. 이렇게 멋진 친구들이 있다니 태국의 미래가 밝습니다. 나이도, 고향도 제각각이지만 영어도 능통하고, 봉사심도 투철하고, 무엇보다 코끼리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습니다. 아시아에서 온 코끼리 원정대가 반갑다고 많이 신경 써 주고, 챙겨 준 덕분에 이곳에서의 생활이 더 수월했지 않나 싶어요.

하나하나 다 언급할 수는 없지만 그 밖에도 많은 봉사자들이 있었습니다. 고된 일정 속에서도 늘 서로를 배려하고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이 어찌나 보기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 속에서 저 또한 넘치게 행복했어요. 사진 속에서도 다들 환하게 웃고 있네요. 저는 이 사람들과의 시간을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코끼리들을 위한 마지막 선물

어느덧 마지막 활동을 준비합니다. 바로 ‘코끼리 케이크 만들기’입니다. 찐 바나나에 밥, 그리고 갖가지 과일을 섞어 베이스를 만들어 봅니다. 실제 케이크로 치면 빵 부분이에요. 여기에 크림 대신 수박, 오이, 감자 등으로 토핑을 올려 줍니다. 아무래도 우리 팀은 질보다는 양인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코끼리에게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을까 하고 이것저것 막 추가해 봅니다.

수박으로 ENP라는 글자까지 만들어 올리면 드디어 완성입니다. 맨 왼쪽 케이크가 우리 D조가 손수 만든 케이크예요. 손맛 가득 정성으로 만들다 보니 모두의 손에 밥풀이 가득합니다. 맨 오른쪽에 다른 팀이 만든 케이크도 아기자기한데요. 생일인 코끼리의 이름까지 새겨 넣은 것에서 세심함이 느껴집니다. 완성된 케이크는 하루에 두세 마리 정도에게 특식으로 제공됩니다.

이제 각 팀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케이크를 들고 오늘의 주인공 코끼리가 있는 곳으로 이동합니다. 무게가 꽤 나가기 때문에 조심해야 해요. 극도의 협동심이 요구되는 작업이죠. 코끼리들이 잘 먹어 줄지도 걱정됩니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네요. 기다렸다는 듯이 케이크 위 토핑으로 올라간 과일과 채소를 맛있게 골라 먹습니다. 천천히 꼭꼭 씹어 잘 먹어 주니 고마울 뿐입니다. 다른 팀의 케이크를 받은 다른 코끼리는 베이스부터 해치우더라고요. 코끼리들도 식성이 있나 봅니다. 우리가 보는 앞에서 케이크 한 판을 꿀꺽한 코끼리들은 그 자리에서 시원하게 배출도 선보입니다. 역시 덩치만큼이나 엄청난 양이에요.

ENP가 우리에게 남긴 것들

모든 일정이 끝나고 모두가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저는 아쉬움에 어느 때보다 오랫동안 테라스에 앉아 코끼리들을 바라봤습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한순간도 놓치기 싫더라고요. 앞으로도 이들에게 건강과 행복만 가득하길 기도해 봅니다.

노란색 ENP 티셔츠를 맞춰 입고 모두 모여 단체 사진을 남깁니다. 그런 다음 이곳에서 온 첫날 오리엔테이션을 했던 곳으로 다시 모였습니다. 늘 우리에게 다정했던 가이드들이 돌아가면서 작별 인사를 건넵니다. 그중 와트가 참았던 눈물을 쏟고 맙니다. 봉사자들 가운데에서도 마지막 소감을 전하며 울음을 터트리는 이들이 보입니다. 일주일간 너무나 많은 이야기와 정을 나눈 까닭이겠죠. 저도 이 시간이 아쉽기만 합니다.

이곳에서 할머니 4인방과 처음 인사를 나눴을 때 조안이 한국어로 만날 때 하는 인사가 무엇이냐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안녕’이라고 알려 줬었죠. 그다음부터 조안은 우리를 볼 때마다 ‘안녕’이라고 해맑은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런 조안이 헤어짐을 앞두고 한국어로 헤어질 때 하는 인사말이 무엇이냐고 또 물어 왔습니다. 저는 한국에서는 만날 때와 헤어질 때 인사말이 같다고 알려 줬죠.

“한국에서는 만날 때나 헤어질 때 모두 ‘안녕’이라고 인사해. 그 대신 억양이 달라. 만날 때 안녕은 반가움에 톤이 올라가고, 헤어질 때 안녕은 아쉬움에 톤이 내려가.”

조안은 놀라워하다가 아쉬움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우리에게 ‘안녕’이라고 인사했습니다. 이 인사로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다시 이 인사와 함께 제자리로 돌아가겠죠. 하지만 우리는 이 만남과 작별을 통해 또 한 번 성숙해졌습니다.

2023년의 새해는 ENP에서 맞이할 수 있어 참으로 뜻깊었습니다. 뉴스를 통해서만 코끼리들이 처한 현실을 접했더라면, 이겨울 선생님에게 ENP 이야기를 전해 듣지 않았더라면 한층 더 성장한 지금의 저는 없겠죠.

하루가 멀다 하고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 오는 요즈음입니다. 자라날 아이들에게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삶의 가치를 들려주고 싶은 분이라면 한 번쯤 ENP의 문을 두드려 보세요. 선생님들의 용기가 날갯짓이 되어 더욱 건강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김재우 선생님
김재우 선생님 반포중학교
중·고등학교에서 다년간 체험활동을 담당하고 있는 국어 교사 김재우입니다.
여행을 좋아하며, 특히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창의 활동을 좋아합니다.
‘재우쌤의 창의여행’은 교실을 벗어나 풍부한 감성과 경험을 쌓고 교과 융합 수업을 맛볼 수 있도록 테마를 소개합니다.
딱딱한 학습보다 재미있게 공부하며 스스로 익힐 수 있도록 구성하였고, 흥미 위주의 여행보다는 깊이 있는 학습을 통해
창의력을 기를 수 있도록 정리하였습니다. ‘재우쌤의 창의여행’만의 이야기를 통해 좋은 교육 자료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