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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치앙마이 3편] 코끼리와 친구가 되는 방법

등록일 : 2023-04-14 관련자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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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우쌤

다음은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이 자신의 청나라 견문록 <열하일기>에 남긴 어떤 동물에 대한 기록입니다.

소의 몸뚱이에 나귀의 꼬리, 낙타의 무릎에 호랑의 발, 짧은 털, 회색 빛깔, 어진 모습, 슬픈 소리를 가졌다. 귀는 구름을
드리운 듯하고 눈은 초승달 같으며, 두 개의 어금니 크기는 두 아름이나 되고 키는 1장(약 3미터) 남짓이나 되었다.
코는 어금니보다 길어서 자벌레처럼 구부렸다 폈다 하며 굼벵이처럼 구부러지기도 한다. 코끝은 누에의 끝부분처럼 생겼는데
거기에 족집게처럼 물건을 끼워서 둘둘 말아 입에 집어넣는다.

이 동물의 첫인상이 얼마나 충격적이고도 경이로웠으면 이토록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요? 이미 눈치를 채셨겠지만
이 동물의 정체는 바로 ‘코끼리’입니다. 당시 조선에서는 코끼리를 찾아볼 수 없었기에 박지원의 놀란 가슴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데요.

저 또한 이곳 ENP에서 만난 코끼리들의 인상이 매우 강렬했어요. 아주 가끔 동물원 먼발치에서나 구경하던 코끼리를 매일
코앞에서 마주하니 그럴 만도 했죠. 과연 저는 이 낯선 동물과 7일이라는 짧은?시간 안에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코끼리 원정대 세 번째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구슬땀으로 일구는 코끼리들의 터전

관계의 시작은 서로의 환경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코끼리들이 지내는 공간을 가꾸며 그들의 생활을 가까이서 관찰하는 이 시간은 참 보람됩니다.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채식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은 후 팀별로 모여 스케줄을 확인합니다. 역시 해야 할 일이 산더미입니다.

먼저 코끼리에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인 물통을 청소하러 갑니다. 앞서 코끼리가 하루 엄청난 양의 물을 마신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요. 이 점을 생각한다면 코끼리의 물통이 늘 깨끗하게 관리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3인이 짝을 이뤄 물통 구석구석을 박박 문지릅니다. 고여 있던 물을 빼 주고 물이끼를 없애는 과정이에요.

겨울이 되면 기온이 떨어져 밤에는 많이 춥기 때문에 코끼리 우리 아궁이에도 불을 지펴야 합니다. 그래서 땔감을 모으고 아궁이 옆에 쌓아 두는 일이 추가로 필요하죠. 나무 기둥과 잔가지들을 고루 모아 차에 싣고 목적지에 다시 내려 줍니다.

다음으로는 이곳 활동 중 가장 힘들기로 정평이 난 ‘코끼리 우리 모래 정리하기’에 돌입합니다. 코끼리는 자기 전에 우리에 모래를 깔아 주면 그 위에서 뒹굴며 논다고 합니다. 이들이 밤새 한바탕 뒹굴고 난 우리는 그야말로 난장판입니다. 매일 아침, 여기저기 흩어진 모래를 높게 쌓아 주지 않으면 안 되죠. 우리의 미션은 한 마디로 코끼리의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정말 힘듭니다! 먼저 건조한 모래가 사정 없이 날리거든요. 황사용 마스크를 썼는데도 코와 입 속으로 모래 먼지가 마구 들어 옵니다. 삽질은 또 어떻고요. 모래의 무게가 만만치 않은데 다가 오래간만에 삽질을 하려고 하니 팔목과 어깨에 무리가 오더라고요. 이때부터 몸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저만 이런 것이 아닐 텐데 함께하시는 분들은 이 악조건 속에서도 쉬지 않고 삽질을 이어갑니다.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지만 몸이 그 마음을 따라 주지 않아 속상할 뿐입니다.

작업이 끝나고 나니 모두 모래 범벅이 됐네요. 이것도 추억이니 기념사진을 남깁니다. 고단함을 달래기 위해 오늘은 기필코 마사지를 받아야겠습니다.

동물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세상

거대한 트럭을 타고 ENP에서 차로 약 10분 정도 떨어진 마을 ‘촉차이(ChokChai)’로 향했습니다. 트럭에는 바나나, 수박 등 코끼리들에게 줄 먹이도 함께 실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심해지기 전까지만 해도 촉차이는 코끼리를 타고 주변을 돌아보는 코끼리 라이딩으로 잘 알려진 관광 명소였습니다. ENP의 설립자인 렉 차일러는 예전부터 이곳 관광 사업에 이용되는 코끼리들을 구조하려고 노력했다고 해요. 그러나 당시 코끼리 라이딩은 관광객들에게 매우 인기가 좋은 상품이었기 때문에 라이딩 캠프 운영자는 렉의 손을 잡을 리 만무했습니다. 그러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점차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고, 캠프 운영에 어려움을 느낀 운영자는 그제야 렉에게 코끼리들을 넘겼습니다.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코로나19가 아이러니하게도 코끼리들에게는 세상에 둘도 없는 자유를 제공한 셈입니다. 비단 코끼리들만 자유를 얻은 것은 아니겠죠. 거리 두기의 빗장을 점차 풀어 나가는 요즈음, 그동안 우리가 동물을 소유의 대상으로 여겼던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누구도 동물의 터전을 함부로 빼앗고, 그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할 자격은 없을 텐데 말이죠. 더 많은 사람들이 동물권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동물권이란? 동물권이란 동물이 지니는 기본적인 권리로, 동물도 인간과 동등한 생명권을 지니며 불필요한 고통을 피하고 학대나 착취를 당하지 않을 권리를 갖고 있다는 개념입니다. 동물권은 인권의 주체가 여성, 노동자,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로 점차 확장되면서 자연스럽게 등장했으며, 특히 1970년대 호주의 철학자이자 동물 해방론자인 피터 싱어가 동물의 도덕적 평등을 강조하며 쓴 저서 <동물 해방>은 사회적으로 큰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그는 책에서 ‘모든 생명은 소중하며 인간 이외의 동물도 고통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생명체’라고 언급했습니다. 세계적으로 동물 실험, 윤리, 보호에 대한 규정이 마련되는 추세이며, 우리나라는 1991년에 동물에 대한 학대 행위 방지 등 동물을 적정하게 보호·관리하는 사항을 담은 ‘동물보호법’을 제정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코끼리 라이딩 캠프였던 이곳에서는 코끼리들이 자유로이 뛰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곳곳에서 과거 통제와 억압의 흔적을 느낄 수 있어요. 코끼리들의 다리를 묶어 두었던 쇠사슬도 여전히 남아 있네요.

그 아픈 시간들을 지우기 위해 저를 포함한 자원봉사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청소에 임했습니다. 우리에 가득 쌓인 똥을 퍼내고 트럭에 싣고 온 먹이도 코끼리들에게 나눠 줬어요. 모두가 땀 흘린 덕분에 코끼리들이 잠을 청하는 우리는 말끔히 정리됐네요. 그 옆에는 거대한 똥 밭이 생겼지만요.

우리의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코끼리들은 한가로운 오후를 보냅니다. 이들의 생각을 다 읽을 수는 없지만 흔들리는 꼬리가 우리에게 건네는 고맙다는 인사 같아서 좋아요. 이제 더 이상 코끼리가 무섭지 않습니다.

ENP 코끼리,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다

촉차이 코끼리 라이딩 캠프에서 코끼리 한 마리가 유독 눈에 띕니다. 이 친구(왼쪽)는 아직 사람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발견 당시 피부에 상처가 많았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주기적으로 소독 치료를 받고 있죠.

사연 없는 사람이 없듯 이곳 코끼리들에게도 말 못 할 아픔이 하나씩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ENP에 머무는 코끼리의 80%가 인간에게 받은 학대로 장애를 안고 살아갑니다.

평생 뒷발에 족쇄를 차고 다니다가 절름발이가 된 코끼리(하단 왼쪽)가 있는가 하면 척추가 심하게 휘어져 서 있는 것조차 힘겨워 보이는 코끼리(하단 오른쪽)도 있습니다. 이제 막 30살이 넘은 한 코끼리는 벌목에 이용되다가 다리가 부러져 코끼리용 특수 의족을 차고 생활하고 있죠.

코끼리 라이딩에 동원된 코끼리 중에는 두 눈이 먼 아이도 있습니다. 그 상태로 매일 등에 안장을 얹고 관광객을 태웠다고 합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조련사의 통제 하에 살았던 코끼리들은 작은 기척에도 소스라치게 놀라거나 물에 잘 들어가지 않는 등 정신적으로도 아주 쇠약합니다. 외관상 장애가 보이는 친구들은 물론이고 겉보기에는 멀쩡한 친구들까지 속으로는 엄청난 고통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저려 옵니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점은 ENP로 구조된 코끼리들 모두 사람의 보살핌과 자연의 자유로움 속에서 조금씩 상처를 회복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코끼리들의 아픔까지 헤아리고 나니 이제 정말 이들과 친구가 된 것 같습니다.

“나는 동물을 이용해 돈을 버는 사람들에 대항하여 무조건 싸우겠습니다. 동물과 인간은 공존하면서 함께 행복해야 합니다.”

저도 세상 모든 동물들의 삶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더 크게 소리 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NP에서의 생활이 여전히 꿈만 같은데 어느새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치앙마이 코끼리 원정대 그 대단원의 막을 기대해 주세요!

김재우 선생님
김재우 선생님 반포중학교
중·고등학교에서 다년간 체험활동을 담당하고 있는 국어 교사 김재우입니다.
여행을 좋아하며, 특히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창의 활동을 좋아합니다.
‘재우쌤의 창의여행’은 교실을 벗어나 풍부한 감성과 경험을 쌓고 교과 융합 수업을 맛볼 수 있도록 테마를 소개합니다.
딱딱한 학습보다 재미있게 공부하며 스스로 익힐 수 있도록 구성하였고, 흥미 위주의 여행보다는 깊이 있는 학습을 통해
창의력을 기를 수 있도록 정리하였습니다. ‘재우쌤의 창의여행’만의 이야기를 통해 좋은 교육 자료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