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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치앙마이 2편] ENP에서의 소중한 하루하루

등록일 : 2023-03-20 관련자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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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우쌤

ENP에서의 일상은 특별함의 연속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학교에 도착해서 수업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제 주요 일과였다면 ENP에서는 코끼리에게 줄
먹이를 만들고 코끼리 똥을 치우는 시간이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했어요. 힘을 써야 할 때도 많았지만 아픈 내색 없이 잘
놀고 있는 코끼리를 보고 있노라면 고단함보다 감사함이 앞서더라고요. 또 오후 시간 잠깐 책을 읽는 여유, 금방이라도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은 매일의 선물처럼 느껴졌습니다.

오늘은 ENP에서의 이 생경하고도 소중했던 기억들을 여러분과 함께 나눠 보려고 합니다.
 

낯선 일상이 주는 행복

ENP에서 눈을 뜨니 공기부터 상쾌합니다. 평화롭고 고요한 아침이에요. 우리가 머무는 숙소는 코끼리가 잠을 자는 우리와 마주하고 있어 이따금 코끼리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려 오기도 했지만 이를 배경음 삼았더니 간밤에 더 푹 잘 수 있었답니다. 이곳이 아니면 쉽사리 경험할 수 없는 아침이기에 참 귀하게 느껴졌어요.

이곳의 일과는 매우 심플합니다. 식사 시간도 규칙적이죠. 아침은 오전 7시, 점심은 오후 12시, 저녁은 오후 6시에 맞춰서 1시간 동안 제공됩니다. 뷔페식으로 차려지기 때문에 시간 안에 와서 자유롭게 먹으면 되는데요.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식단이 모두 채식이라는 사실입니다. ENP가 동물의 권리를 존중하고 동물 착취를 거부하는 곳임을 생각한다면 아마 당연한 방침일 것입니다. 저는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이곳 음식들이 입에 잘 맞았습니다. 메뉴도 너무 다양한 데다가 재료 본연의 풍미가 살아있어서 정말 맛있었어요. 앞으로도 계속 채식에 도전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코끼리의 일일 섭취량이 300㎏이라고?

코끼리의 거대한 규모 코끼리는 크게 아프리카 사하라 남쪽에 서식하는 아프리카코끼리와 동남아시아 등지에 서식하는 아시아코끼리로 구분합니다. 아시아코끼리는 최대 몸길이가 6m가 넘으며, 무게도 3~5t에 달합니다. 이보다 더 큰 아프리카코끼리는 최대 7.5m까지 자라며 무게도 6t이 넘습니다. 이 무거운 몸을 지탱할 수 있는 이유는 코끼리 발바닥에 완충 역할을 하는 젤리 물질이 많이 분포해 있기 때문입니다. 코끼리의 손이라고도 불리는 2m가량의 긴 코는 그 무게만 100㎏에 육박합니다. 코에는 뼈 대신 15만 개 이상의 많은 근육이 있어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물을 빨아들이는 등 정교하고 자유로운 움직임이 가능합니다.

이곳 코끼리들의 나이는 모두 제각각입니다. 나이가 많은 코끼리는 늙은 사람이 그렇듯 씹기도 어렵고, 소화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어린 코끼리들은 뭐든 알아서 잘 먹지만 늙은 코끼리들은 그들에게 맞는 밥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이런 코끼리들을 위한 밥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주요 임무입니다. 일단 엄청난 양의 바나나를 까는 것부터 시작입니다. 그다음 찐 밥을 바나나와 함께 골고루 섞어 줍니다. 이것을 커다란 바나나 잎에 한 바가지씩 덜어 싸준 뒤 대나무로 꽁꽁 묶고 다시 쪄내면 완성입니다. 코끼리가 잘 먹고 건강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열심히 만들어 봅니다. 처음에는 언제 다 끝내나 걱정했지만 모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작업하니 금방이더라고요. 서툴러서 실수도 많았지만 그 자체로 재미있어 깔깔거립니다. 서로가 만든 것을 자랑도 하면서요.

코끼리 밥을 다 만들고 일어나려던 차에 수박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ENP에는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후원이 오는데 오늘 이 수박도 근처 농가에서 코끼리들을 위해 보내 주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대식가인 코끼리들에게 이보다 더 달콤한 후원이 있을까요? 수박을 실은 차 앞으로 봉사자들이 줄을 섭니다. 그리고 수박을 하나씩 건네받아 부식 창고에 쌓습니다. 많은 인원이 함께하니 그 많던 수박도 금세 다 옮겨졌습니다.

세상에 이로운 코끼리 똥

코끼리들이 지내는 곳은 하루만 지나도 똥으로 가득합니다. 일일 섭취량이 엄청난 만큼 배출하는 양도 많은 것은 당연하겠죠. 더군다나 되새김질을 하지 않는 코끼리는 자신이 섭취한 먹이의 40% 정도밖에 소화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보통 한 마리당 하루 50㎏의 똥을 싼다네요. 이제 이 묵직한 녀석(?)들을 열심히 치울 차례입니다. 소화가 덜 되고 나온 것들이라 그런지 코끼리들의 지난 식사 메뉴가 무엇이었는지도 가늠이 가능할 정도예요. 사탕수수도 보이고 바나나 껍질도 보입니다. 산더미처럼 쌓인 똥을 삽으로 떠서 수레에 싣고, 다시 수레가 가득 차면 차에 모읍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만만치 않아요.

단단하게 뭉쳐진 덩어리들은 그나마 삽으로 퍼내기 수월하지만 흩어져 있는 조각들은 치우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닙니다. 빨리 작업을 끝내자는 생각에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손으로 주워 담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거부감도 들었는데 그런 생각도 잠시더라고요.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입니다.

봉사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코끼리 똥은 소나 돼지 등 다른 동물의 똥과 달리 부식시킬 필요 없이 바로 거름으로 쓸 수 있다고 해요. 코끼리 똥은 섬유질이 40~45%나 함유되어 있고 냄새도 심하지 않은 편인데요. 그냥 던져 놓으면 영양소는 빠져나가 땅으로 흡수되고 잔해는 자연스레 사라져 버린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어찌 코끼리 똥이 더럽다고만 할 수 있겠어요?

코끼리 똥 사용법 태국, 스리랑카 등에서는 풍부한 섬유질이 함유된 코끼리 똥을 종이의 원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코끼리 똥을 햇볕에 바싹 말린 뒤 잘 씻고 이를 오랜 시간 끓여 세균을 없앤 펄프 죽을 만듭니다. 그다음 체로 똥 내의 섬유질을 분리하고 틀로 모양을 잡아 말리면 종이가 완성됩니다. 이처럼 코끼리의 하루 배설물에서 추출한 펄프 10㎏으로는 A4 용지 600여 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1년 치로 보면 코끼리 한 마리가 종이 제작에 들어가는 약 250그루의 나무를 구하는 셈입니다.

코끼리들의 안식처, ENP

코끼리는 알면 알수록 신비한 동물입니다. ENP에 와서 코끼리에 대해 그간 많이 무지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과 중간에는 ENP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ENP의 공동 설립자이자 렉 차일러의 남편인 데릭 톰슨이 ENP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는 과거 아기 코끼리 ‘캄라’와의 감동 영상으로 화제가 됐던 인물이기도 한데요. 동물과 교감하며 살아간다는 그의 이야기가 마음 깊이 새겨집니다. 밤에는 심야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Love and Bananas>를 봤습니다. 주인공은 시각 장애 코끼리 ‘노이나’입니다. 노이나가 구조될 당시부터 ENP로 오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한 시선으로 담아낸 이 작품을 보다가 가슴이 먹먹해졌어요.

덕분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노이나를 보려고 달려왔어요. 다행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영화 같은 사연을 가진 코끼리가 어디 노이나뿐일까요? 오랜 시간 동안 인간에게 학대받는 삶을 살다 ENP로 구조된 코끼리부터 이곳저곳에 장애가 있는 코끼리까지 모두 측은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이곳에 오게 됐으니 앞으로 행복할 날만 남은 거겠죠? 바삐 몸을 움직이니 이곳에서의 시간이 유독 빠르게 흐르는 것 같습니다. 아직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요. 다음 편에서는 오늘 못다 소개한 ENP에서의 활동과 코끼리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려 드릴게요.

김재우 선생님
김재우 선생님 반포중학교
중·고등학교에서 다년간 체험활동을 담당하고 있는 국어 교사 김재우입니다.
여행을 좋아하며, 특히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창의 활동을 좋아합니다.
‘재우쌤의 창의여행’은 교실을 벗어나 풍부한 감성과 경험을 쌓고 교과 융합 수업을 맛볼 수 있도록 테마를 소개합니다.
딱딱한 학습보다 재미있게 공부하며 스스로 익힐 수 있도록 구성하였고, 흥미 위주의 여행보다는 깊이 있는 학습을 통해
창의력을 기를 수 있도록 정리하였습니다. ‘재우쌤의 창의여행’만의 이야기를 통해 좋은 교육 자료가 되기를 바랍니다.